수능 영단어 — 범위는 공개된 적이 없고, 빈출 목록은 재료다
'수능 영단어'를 검색하는 사람은 대부분 목록을 찾고 있다. 그런데 이 검색에는 애초에 정답이 하나로 존재하지 않는다. 수능 영어에는 출제 어휘의 공식 목록이 공개된 적이 없다. 그러니 어떤 목록을 받느냐가 아니라, 없는 범위를 어떻게 내 계획으로 바꾸느냐가 진짜 질문이 된다. 이 글은 그 순서대로 정리한다 — 범위의 정체, 빈출 목록의 구조, 그리고 그걸 복습되는 덱으로 바꾸는 작업.
어휘 범위라는 것의 정체
수능 영어에는 정해진 어휘 목록이 공개된 적이 없다. 다만 출제가 EBS 연계 교재를 바탕으로 이뤄진 지 오래라, 그 교재들과 기출에 반복해서 나온 어휘가 사실상의 범위 역할을 한다. 시중의 수능 단어장은 이 두 축을 정리한 것이다. 출판사나 강사가 기출을 훑어 자주 나온 순서대로 묶고, 여기에 교과과정 필수 어휘를 얹는다. 공식 문서가 아니라는 뜻에서는 어느 목록이든 '근사치'이지만, 시험의 얼개가 오래 유지되면서 어휘 분포 자체는 해마다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목록 고르기로 새는 시간은 구실이 없다 — 목록끼리는 내용이 겹치고, 갈리는 건 그다음이다.
빈출 목록이 어떻게 짜여 있는지
시중 단어장의 구성은 대체로 공통적이다.
Day별 분할. 두꺼운 목록을 하루치 단원으로 쪼개 나눠 놓는다. 수험 계획이 책에 이미 짜여 있는 형태다. 문제는 책이 짜놓은 속도와 내 속도가 어긋난다는 것 — 학교 진도와 모의고사 일정 사이에서 Day를 지키는 건 금방 무너진다.
빈출순 배열. 자주 나온 단어가 앞에 온다. 그런데 수험생의 대부분은 이미 앞쪽의 상당 부분을 알고 있다. '빈출'은 나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시험에 대한 정보다.
A-Z 대비 정리. 뜻 여러 개를 나란히 놓고, 비슷한 단어를 옆에 붙인다. 시험이 실제로 물어보는 형태와 가장 가까운 부분이지만, 표로 놓인 지식은 놓여 있을 뿐 스스로 떠오르게 만들지는 않는다.
이 구조가 시사하는 바는 하나다. 목록은 어디까지나 재료고, 재료를 내 수준으로 걸러내는 작업은 내가 해야 한다.
첫 작업은 외우기가 아니라 걸러내기다
목록을 처음 훑으면 모르는 단어가 연달아 나오지 않는다. 아는 단어 사이에 섞여 나온다. 여기서 '전부 외우기'로 시작하면 이미 아는 단어를 다시 보는 데 하루가 끝난다. 방향은 반대다. 한 번 훑으면서 모르는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린다. 빈출순 목록일수록 이 걸러내기의 수확이 크다 — 남는 게 목록의 일부가 되는데, 그 일부만이 이제 내 덱이다.
계산은 이렇게 해볼 수 있다. 수험 기간을 대략 300일로 잡고 하루 새 카드 15장이면 4,500장이다. 어떤 수능 목록 하나를 세 번 돌릴 분량이다. 반대로 내신과 모의고사를 병행하는 수험생이 같은 300일을 하루 8장씩만 가면 2,400장 — 1,500 단어 목록을 한 바퀴 반 남짓 돌리는 양이다. 범위가 없다는 게 불안한 게 아니라, 계산해 보면 '통째로 외우기'가 애초에 단위가 안 맞는다는 얘기다. 수는 예시다. 내 하루 가용 시간을 넣으면 내 계산이 나온다.
EBS 지문에서 만난 단어가 목록보다 우선이다
수능 영어의 읽기 문제는 빈칸, 순서, 문장 삽입처럼 지문 안에서 어휘를 묻는 형태가 많다. 그래서 모르는 단어를 만나는 1순위 장소는 단어장이 아니라 지문이다 — EBS 교재나 기출을 읽다가 걸린 단어가 그날의 첫 카드가 된다. 이때 카드의 앞면은 내가 놓친 그 뜻이어야 한다 — address를 '연설하다'로만 알고 있었다가 지문에서 '문제를 다루다'로 걸렸다면 카드는 그쪽이다. 뜻이 어긋나는 지점이 수능 어휘 문제의 주 공격면이라는 건 토익과 같은 구조인데, 토익 영단어 pdf에 같은 뼈대로 정리돼 있다.
지문에서 뽑을 때는 문장째 저장한다. 단어가 어떤 지문에서 어떤 낯으로 나왔는지가 맥락으로 남는다. 남이 만든 A 단원과, 내가 실제로 걸린 단어는 후자가 훨씬 빨리 붙는다. 이 '기출에서 모으고 간격으로 돌린다'는 두 축은 수험영어 전반에 그대로 적용되는데, 공무원 영어 단어장이 그 원형이다.
덱 만들기, 실제 흐름
저는 이 흐름을 만드는 쪽(Piccard)에서 일하고 있어서 그 도구로 적는다. 재료를 덱으로 바꾸는 동작은 세 갈래다.
목록 올려서 걸러내기. 받아둔 pdf나 학교에서 받은 어휘 자료를 통째로 옮겨 치지 않는다. 자료를 올리면 단어·예문이 담긴 카드 후보가 뜨고, 필요한 것만 골라 저장한다 — 한 번에 스무 장까지. 몰아서 넣을 수 없다는 제한이 첫날 분량을 대신 정해 준다. 걸러낸 결과가 내 덱이 된다.
지문에서 뽑기. EBS 지문이나 기출에서 모르는 단어를 만나면 그 문장과 함께 카드로 뺀다. 앞면은 단어, 뒷면은 내가 놓친 뜻. 예문 자리에는 그 단어가 나온 원래 문장이 들어가고, 품사와 발음 기호가 같이 붙는다. 필요하면 연어를 붙이고, 충전한 에너지를 써서 AI 이미지를 얹을 수도 있다 — 추상 명사처럼 그림이 잘 안 그려지는 단어는 빼면 된다.
영상에서 걸리면 그 자리에서. 듣기 어휘가 약하거나 지문 밖에서 어휘를 만나고 싶을 때는 자막이 있는 유튜브 영상을 본다. Piccard 확장을 켜면 이중 자막이 뜨고, 모르는 단어를 클릭하면 후보 카드가 오고, 고르면 그 자리 문장을 예문으로 저장된다. 클릭 두 번이다. 영상이 틀어지던 문장이 그대로 예문이 되니, 나중에 복습할 때 그 장면이 같이 돌아온다.
복습은 FSRS가 잡는다
카드가 쌓이면 관리 문제가 생긴다. 무엇을 언제 다시 볼지. 이걸 손으로 하면 밑줄 친 단어장이 되고, 시스템에 맡기면 복습 큐가 된다. Piccard의 복습 일정은 FSRS-6 알고리즘이 계산한다 — 카드마다 잊을 만한 시점을 추정해서 그날 볼 것만 준다. 네 단계(다시/어려움/좋음/쉬움)로 평가하면, 틀린 카드는 간격이 짧아지고 맞힌 카드는 길어진다.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잊는다는 망각 곡선과, 잊기 직전에 다시 만난 것만 오래 남는다는 간격 반복 연구가 이 설계의 바닥에 있다. 단어장의 몇 Day째냐가 아니라 이 단어를 몇 번 틀렸냐로 관리되는 셈이다.
모의고사 일정에서 거꾸로 계산한다
수능은 날짜가 정해진 시험이니 계획은 뒤에서 세운다. 새 카드는 시험 한두 달 전에 멈춘다 — 9월 평가원 모의고사와 10월 학력평가 시점이 대체로 그 선이다. 그다음부터는 오늘 돌아온 카드만 비우고, 마지막 2~3주는 자주 틀린 카드에만 시간을 쓴다. '자주 틀린' 목록이 손에 있느냐 없느냐가 시험 전날 밤을 갈라놓는데, 손으로 오답노트를 만들던 시절과 달리 이건 이미 만들어져 있다. 접수일부터 거꾸로 세는 구조 자체는 토익 영단어 pdf의 그것과 같다.
이 방식이 안 맞는 순간
시험이 두세 달밖에 안 남았다면 새로 덱을 짓지 마라. 그 시간에 받아둔 목록을 두 바퀴 훑고 마는 게 낫다. 이미 단어장 하나를 끝까지 돌고 있는 사람이라면 도구를 바꾸는 것보다 그대로 끝내는 게 낫다 — 이 글의 방식은 처음부터 덱을 짓는 사람의 것이다. 그리고 다른 시험 어휘라면 뼈대는 같아도 재료가 다른데, 아이엘츠 단어장이 그 예시다.
비용
Piccard의 구조만 적는다. 시작할 때 150 에너지가 주어지고, 카드 한 장에 1 에너지다. 쓴 만큼만 $5/$10/$20 충전하는 구조라 매달 나가는 돈은 없고, 충전한 에너지는 만료되지 않는다. 요금은 사이트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시작
Piccard 크롬 확장 설치 후, 받아둔 목록의 첫 묶음을 올려 모르는 것만 골라도 되고, 오늘 읽은 EBS 지문에서 걸린 단어부터 저장해도 된다. 카드 오십 장에 오늘 복습까지 비우면 시작은 끝난다 — 범위가 공개된 적 없다는 걸 알고 시작했으니, 남은 기간은 불확실성에 내맡기지 말고 내 걸러낸 덱에 맞춰 쓰면 된다.
(pdf와 단어책을 카드로 바꾸는 흐름은 영어 단어장 pdf에서, 시험이 아니라 영상으로 어휘를 모으는 흐름은 유튜브 보다가 영어 단어장 만들기에서 다룹니다. 시험별로는 토익 영단어 pdf와 공무원 영어 단어장이 같은 뼈대입니다.)
전체 글 목록은 Piccard 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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