뜯어먹는 중학영단어 1800 — 범위는 3년치인데 회독은 오늘치다
'중학 영단어'를 검색하는 순간에는 대개 교재가 이미 정해져 있다. 뜯어먹는 중학영단어. 같은 시리즈 안에서 수록 단어 수를 달리한 판이 여럿 검색되는데, 1800짜리와 1200짜리가 대표적이고, 검색어 옆에는 늘 pdf가 붙어 다닌다. 이 글은 그 교재를 깎는 글이 아니다. 시리즈 이름부터가 통째로 삼키지 않고 뜯어서 먹는다는 뜻이다. 실제 구성도 그 이름에 맞게, 단어를 어원으로 풀어 보여 주는 범위표다. 문제는 표가 아니라 표의 수명 쪽에 있다. 중학 영단어는 1년짜리 과목이 아니라 3년짜리 과목이라는 것 — 이 글은 거기서 시작한다.
교재가 주는 것과 안 주는 것
중학 어휘 교재의 구성을 뜯어 보면 공통적으로 세 가지다.
고정된 범위. 중학 3년 동안 볼 필수 어휘를 한 표로 묶는다. 수록어 수는 판마다 다르지만 '이 안에서 나온다'는 약속 자체가 교재의 상품이다. 범위가 고정돼 있다는 건 학습자에게는 반가운 일인데, 시작하자마자 끝이 보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원 풀이. 단어를 통째로 외우지 않고 어원으로 뜯어서 보여 준다. 처음 만나는 단어의 첫 회독을 빠르게 만들어 주는 장치다.
훑기 순서. 표가 나눠져 있고 순서가 있다. 하루에 어디까지 볼지는 책 편 쪽에서 이미 정해 놨다.
셋 다 '오늘 어디까지 훑을까'에는 답한다. 답하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다 — 중1 봄에 훑은 단어가 중3 겨울에 살아 있나. 교재의 시간표는 훑기의 시간표지, 기억의 시간표가 아니다.
3년은 밑줄이 버티는 길이가 아니다
단어책 회독의 전형적인 모양은 정해져 있다. 모르는 단어에 밑줄, 다음 회독에 밑줄 친 것 다시 읽기. 이 방식이 성립하는 전제는 '다음 회독'이 며칠 뒤에 온다는 것이다. 학기 단위로 쓰던 습관을 3년짜리 범위에 그대로 얹으면 전제가 깨진다. 중1 때 밑줄 친 단어와 다시 만나는 사이에 1년, 2년이 앉는다. 밑줄은 '여긴 다시 봐야 한다'까지지 '지금이 그때다'까지 말해 주지 않는데, 간격이 그만큼 벌어지면 '그때'는 오지 않고 어김없이 잊힌 뒤에 온다. 다시 읽는 쪽보다 스스로 꺼내 보는 쪽이 기억을 오래 남긴다는 테스팅 효과 연구는 오래 쌓여 왔는데, 밑줄 회독이 반복하는 건 알아보기뿐이고 꺼내기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는다. 시험장 지문에서 필요한 동작은 반대 편이라는 점은 수특 영어 단어에서 정리한 것과 같은 지점이다.
걸러내는 쪽이 유독 싼 구간이다
중학 범위에는 특징이 하나 있다. 이미 아는 단어의 비중이 크다. 학교 영어와 생활에서 이미 익힌 어휘가 표의 상당 몫을 차지하는 학생이 드물지 않다. 그래서 중학 영단어는 '외우기'보다 '걸러내기'의 이득이 유독 큰 구간이다 — 모르는 것만 남기고 아는 것은 흘려 보내는 첫 훑음이 곧 분량을 정한다.
수는 예시로 잡는다. 1800단어짜리 판을 훑는데 처음 보는 단어가 3분의 1이면 600장. 하루 새 카드 5장이면 새 카드만 120일, 한 학기다. 중1 3월에 시작하면 여름방학 전에 새 카드가 끝나고 이후 3년은 복습만 돈다. 걸러내지 않고 1800장을 통째로 안고 가면 세 배를 짊어지는 셈인데, 어느 쪽이 끝나는지 보이느냐의 차이다. 우리 쪽에서 교재 어휘표 pdf로 이 흐름을 돌려 본 범위에서는 중학 범위가 수능 교재보다 '이미 아는 단어' 비중이 눈에 띄게 높다. 통계가 아니라 관찰이지만, 그래서 걸러내기의 계산이 대개 더 후하게 나온다.
변환: 표에서 덱으로
저는 이 흐름을 만드는 쪽(Piccard)에서 일하고 있어서, 그 도구로 적는다. 재료가 덱이 되는 길은 세 갈래인데, 교재를 쓰는 지금은 첫 갈래가 메인이다.
어휘표를 올려 후보에서 고르기. 교재의 단어표는 손에 있는 그대로 올리면 된다 — pdf든, 표를 사진으로 찍든. 단어·뜻·예문·발음이 담긴 후보 카드가 0에서 100까지의 우선순위 점수와 함께 오고, 모르는 것만 골라 한 번 확정한다 — 한 번에 최대 스무 장이다. 올린 표가 통째로 카드가 되는 길은 없다. 스무 장이라는 끊어짐이 하루 분량을 대신 정해 주니, 사실상 '아는 것 버리기'를 점수순으로 도와주는 흐름이다.
화면에서 두 번 클릭. 영어 지문이나 기사를 화면에서 읽다가 모르는 단어를 두 번 클릭하면 영어 학습자 사전이 먼저 뜨고, 한 번 더 누르면 카드가 된다. 교재 밖에서 만나는 단어가 그 자리에서 저장된다.
자막이 있는 유튜브에서 그 줄만. 자막이 있는 영상을 보다가 자막 한 줄을 클릭하면 그 줄로 카드 후보가 오고 남길 것만 고른다. 클릭한 그 줄만 저장된다. 자막이 없는 영상은 안 된다. 저장한 카드는 복습 때 그 문장이 나오던 영상 시점을 그대로 재생한다.
복습 일정은 FSRS-6가 계산한다
3년짜리 범위를 관리하려면 '누가 언제 잊는지'를 계산하는 쪽이 있어야 한다. Piccard는 카드마다 잊을 만한 시점을 추정해 그날 볼 것만 주는데, 일정을 계산하는 건 FSRS-6 알고리즘이다. 복습 평가는 네 단계(다시/어려움/좋음/쉬움)이고, 목표 유지율은 0.9가 기본이며 이 유지율을 바꾸는 설정은 따로 없다. 틀린 카드는 간격이 짧아지고 맞힌 카드는 길어진다.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잊는다는 망각 곡선과 잊기 직전에 다시 만난 것만 오래 남는다는 간격 반복 연구가 설계의 바닥에 있다. 중학 영단어로 치면 몇 학년 때 외웠는지와는 관계없이 몇 번 틀렸는지로 관리되는 셈인데, 3년 스케일에서는 이 차이가 학년 스케일의 차이가 된다. 중1 봄의 단어가 중3 겨울까지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게 이 범위의 조건이고, 그 조건을 사람의 회독 감각 대신 알고리즘이 맡는다.
학년에서 거꾸로
중학의 마감은 수능에서 끝나지 않는다. 학기마다 내신이 있다. 계획은 이중으로 세운다.
| 시기 | 하는 일 |
|---|---|
| 중1·중2 | 교재를 훑으며 모르는 것만 카드로 만든다 — 새 카드는 이 시기에 쌓인다 |
| 중3 | 내신 범위에서 걸리는 어휘를 더하고, 새 카드는 방학에만 |
| 내신 2주 전 | 새 카드를 멈추고 돌아온 복습 큐만 비운다 |
| 시험 전 며칠 | 자주 틀린 카드에만 시간을 쓴다 |
자주 틀린 목록이 저절로 만들어져 있다는 게 손으로 오답노트를 적던 방식과 다른 점이다. 중3이 끝나고 나면 범위의 주인이 바뀌는데, 그다음은 수능 영단어 쪽 이야기다.
이 방식이 안 맞는 순간
내신이 일주일밖에 안 남았다면 새로 덱을 짓지 마라. 그 시간에 이번 시험 범위를 세 번 읽고 마는 편이 낫다. 인쇄물 pdf만 찾는 중이라면 이 글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인쇄해서 손으로 훑는 건 여전히 유효한 방법이고, 다만 인쇄물로 할 수 있는 건 읽기까지고, 꺼내기를 시키는 일은 다른 장치의 몫이라는 것만 적어 둔다. 단어를 외우는 데 이미 문제가 없고 성적이 그대로 오르는 중이라면 도구를 바꿀 이유가 없다. 이 글은 3년 범위를 몇 번 훑다가 회독이 무너진 경험의 것이다.
비용
Piccard의 구조만 적는다. 시작할 때 150 에너지가 주어지고, 카드 한 장에 1 에너지다. 쓴 만큼만 $5/$10/$20 충전하는 구조라 매달 나가는 돈은 없고, 충전한 에너지는 만료되지 않는다. 요금은 사이트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시작
Piccard 크롬 확장 설치 후, 오늘 훑을 교재 표 한쪽을 올려 후보에서 모르는 것만 골라 스무 장 안에서 저장한다. 600장짜리 산수가 무섭다면 첫 확정을 다섯 장으로 줄여도 된다 — 어느 쪽이든 오늘 돌아온 복습까지 비우면 시작은 끝이다.
(시험 어휘의 범위가 어떻게 성립하는지는 수능 영단어에서, 고등 과정의 범위는 고등 필수 영단어 pdf에서, 같은 뼈대로 다른 교재를 다룬 글은 해커스 토익 단어에서 다룹니다.)
전체 글 목록은 Piccard 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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